정보화마을 서귀포 구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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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억리에서 옹기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마을 약사에 의하면 현재로부터 약 250년 전인 설촌 당시부터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조(趙),

    문(文), 양(梁), 고(高)씨 등이 촌락을 형성하여 거주하면서 옹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주는 사료로는 1780년대에 편찬된 『濟州邑誌』를 들 수 있다. 즉 이 책의 대정현 관련 기록 중 대정현에 옹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그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다.

    옹기가마인 노랑굴은 대정읍 구억리 상동에 위치하여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마을 서편에 있다 하여 이 노랑굴을 '섯굴'이라 부른다. 노랑굴 천장은 흙으로 만들어진 벽돌을 사용하여 축조된 점으로 보아 가까운 시기에 본토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옹기가 생산된 곳은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상동마을로 추정된다. 구억리에 옹기 가마가 먼저 만들어진 이유로는
    첫째, 내부적으로는 구억리에서는 농사를 지을만한 농경지가 부족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대신하여 수익을 가져다 줄 대상이 필요했다.
    둘째, 일찍이 옹기의 상업성에 주목한 주민들이 구억리에 거주하였으며
    셋째, 구억리 주민들은 구억리에서 생산된 옹기를 인근 지역에 위치한 안덕면 사계리나 대정읍 모슬포 포구를 이용하여 제주도 전지역에 공급할 수 있었다.
    넷째, 옹기 가마 운영에 필요한 연료인 땔감과 인근에서 점토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에 영향을 받아 구억리는 다른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옹기 생산 입지 조건을 갖출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구억리 지역의 토양은 대부분 물 빠짐이 잘 되는 현무암 풍화토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구억리 마을 내에서는 옹기 제작에 필수적인 점토가 생산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접한 신평리에서 옹기의 원료인 점토를 구입하여 이용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내에서 옹기를 만드는 양질의 흙이 분포하는 곳은 대정읍 신평리, 무릉리, 한경면 고산리, 조수리 일대이다. 이 밖에 제주시 이도동, 삼양동, 오라동, 애월읍 광령리 일대 등에도 분포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옹기 생산에 필수적인 점토, 급수 등에서 그다지 적합한 곳이 되지 못하여 기본적이 생산 여건이 우리나라의 내륙보다 유리하지 못했다. 연로인 땔감은 마을 주변에서 구하여 이용하였다. 옹기 가마에서 옹기를 구울 때 연료로 썼던 나무 재료를 구억리에서는 '선비'라고 불렀다. 선비란 잡목의 나뭇가지를 잘라 놓은 땔감을 의미한다.

    조선조 후기에 제주 고온 옹기(일명 노랑그릇)는 대정읍 구억리 일대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제주 전역에 보급되었다. 조선 말기에서 1900년대 초기경에는 하가리, 광령리, 제주시 노형동 등지로 펴지면서 저온 옹기인 검은 그릇과 혼용되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