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마을 서귀포 구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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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명 : 제주 서귀포 구억마을
    -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 유형 : 기타

    소개

    정난주
    조선 순조, 헌종 때 제주 대정에 유배된 정난주는 아명이 정명련(丁命連), 세례명은 마리아이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조카다. 어려서 둘째아버지인 정약전(丁若銓)에게 서학을 배우고, 장성한 뒤 고모부인 베드로 이승훈(李承薰)에게 세례를 받는다. 외숙인 이벽(李蘗)에 의해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다져졌다.

    정난주는 큰아버지 정약종(丁若鍾)에게 학문을 배우던 황사영(黃嗣永)과 혼인하게 된다. 황사영은 17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재로 정약종에 의해 천주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서울에서 시모(媤母)를 모시고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우며 착실한 천주교신자로 살게 된다.
    황사영은 1795년 주문모 신부에게 알렉산델아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활동하고, 정난주는 남편 뒷바라지에 열정을 바쳤다. 그리고 아들 황경헌은 주신부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한다.

    1799년 정조가 승하하고 정순황후의 섭정이 시작되자 천주교에 대한 탄압정책이 시작된다. 1801년(순조1년) 1월 7일「사학금지포고령」이 내려지고 정난주와 식구들은 마재로 피신한다. 남편 황사영은 이들과 헤어져 충북 제천의 배론 골짜기에 은신하는데, 조선 천주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백서를 써서 북경의 주교에게 보낸다. 그러나 발송 직전에 발각되어 모반 등의 죄로 순교한다.

    이 일로 정난주는 두 살인 아들을 데리고 제주특별자치도로 귀양오게 된다. 유배를 가던 중 호송선이 하추자도 예초리 서남쪽 물세울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정난주는 아들 황경헌을 살리기 위해 ‘황새바위’갈대밭에 내려두고 유배의 길로 떠났다. 지금 황경헌의 6대손 황이정씨가 예초리에 생존해 있다.


    정난주는 대정현에 관노로 귀양가서 김석구의 아들 김상집(8세) 형제를 양자처럼 기르며 1838년 음력 2월 1일 66세를 일기로 죽으니 모두 '한양 할머니'가 죽었다고 슬퍼하였다.

    지금 대정읍 동일리 9번지의 정난주 묘역은 제주교구 선교 1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천주교 성지로 개발되어 순교자 정난주 마리아의 고혼을 기리고 있다.

    요금안내

    무료

    오시는 길

    1. 제주공항 및 제주항 여객터미널 -> 95번 평화로 -> 대정방면 -> 안성리 -> 천주교성지
    2. 서귀포 -> 중문관광단지 -> 서부일주도로 -> 대정방면 -> 안성리 -> 천주교성지

    약도